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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P><FONT size=2><SPAN style="FONT: bold 12pt 돋움,돋움체; LETTER-SPACING: -1px">임(林)씨 총론</SPAN> 韩国林氏(<STRONG>Korea</STRONG> <STRONG>Lim</STRONG> family):</FONT><A href="http://lin.5d6d.com/thread-17-1-3.html"><FONT color=#800080 size=2>http://lin.5d6d.com/thread-17-1-3.html</FONT></A><BR><BR><!--본문내용--><FONT size=2>▣ 임씨는 총 90개의 본관과 672,755명이 있다.(1985년) <BR>강릉 경주 고안 공주 광주 교동 금산 길안 김해 나주 남양 남원 단양 단월 담양 대구 대전 동래 무안<BR>밀양 반월 보성 보은 부안 부여 삼척 상산 상주 선산 성산 성주 수원 순창 순천 순풍 안동 안산 안성 <BR>안의 여주 연안 연일 영월 영천 영흥 예산 예천 옥구 옥야 옥천 온양 울산 울진 원주 월성 은진 이안 <BR>이천 익산 임천 임파 임하 장성 장수 장흥 전주 정주 조양 주안 진주 진천 천안 청송 청주 청풍 춘천 <BR>충주 태평 파평 평산 평택 풍산 풍전 한양 해남 해주 해진 홍천 회진 횡성 <BR><BR>▣ 길안 임씨(吉安 林氏) <BR>시조 임박(林樸)은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이며 홍건적에게 개경이 함락되자 사적(史籍), 예서(禮書) 등<BR>을 땅에 묻어 보전했으며, 성균제주(成均祭酒), 대사성, 대언(代言)을 지냈다. <BR>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149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부안 임씨(扶安 林氏) <BR>시조는 임숙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48,042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선산 임씨(善山 林氏) <BR>시조는 임양저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임억령(億齡) : 명종 때 동부승지로 등용되어 병조참의,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했으 며, 문명이 높았다. <BR>임백령(百齡) : 임억령의 동생. 명종 때 호조판서로 을사사화를 일으켜 위사공신 1 등으로 우찬성에 승<BR>진되었다. 7,098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순창 임씨(순창 林氏) <BR>시조 임중연(仲沇)은 임연(林演)의 아들이며, 충숙왕 때 우상시, 밀직부사, 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<BR>에 봉해졌으며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(東征省)을 다스렸다. <BR>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·임선미(先味) : 임중연의 아들. 태학사로서 퇴폐한 예법과 세속을 바로잡는 데 힘쓰다가 고려가 망하<BR>자 은거하여 두문동(杜門洞) 72현(賢)으로 일컬어진다. <BR>500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예천 임씨(醴泉 林氏) <BR>시조 임춘(林椿)는 고려 의종 때 서하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(李仁老), 오세재(吳世才) 등과 함께 <BR>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(唐詩)에 뛰어났다. <BR>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예천 임씨에서 분관된 본관은 경주, 양양, 밀양, 안의 등이 있다. <BR>59,720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[항렬]<BR>18세 상(相)/ 19세 환(煥)/ 20세 기(基)/ 21세 호(鎬)/ 22세 영(永)/ 23세 재(載)/ <BR>24세 묵(默)/ 25세 규(奎)/ 26세 진(鎭)/ 27세 수(洙) <BR><BR>▣ 옥구 임씨(蔚珍 林氏) <BR>시조 임개는 고려 문종 때 내시로서 선종 때 공부상서로 송나라에 다녀오고 추밀원동지사, 서북면병마<BR>사 겸 행영병마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, 형부판사를 역임했으며,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임유문(有文) : 임개의 아들. 숙종 때 요나라, 예종 때 송나라를 다녀오고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. <BR>임경한(景翰) : 순조 때 서예의 대가로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. <BR>266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울진 임씨(蔚珍 林氏) <BR>시조 임민비(林民庇)는 고려 명종 때의 명신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·임중량(仲樑) : 선조 때의 의병장이다. <BR>·임익빈(益彬) : 영조 때의 학자이다. <BR>10,539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은진 임씨(恩津 林氏) <BR>시조는 임성근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·임자미(林自味) : 고려시대에 예조판서를 지냈다. <BR>·임훈(薰), 임운(芸) 형제 : 선조 때 학행과 효행으로 이름났다. <BR>6,859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익산 임씨(益山 林氏) <BR>시조는 임완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981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장흥 임씨(長興 林氏) <BR>시조는 임분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6,580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조양 임씨(兆陽 林氏) <BR>시조는 임세미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조양 임씨에서 분관된 성씨는 <BR>보성 임씨, 안동 임씨, 임천 임씨, 임파 임씨, 임하 임씨, 전주 임씨 등이 있다. <BR>23,688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진천 임씨(鎭川 林氏) <BR>시조 임희(林曦)는 고려 혜종왕의 왕비 의화왕후(義和王后)의 아버지이며 밀양 임씨에서 분관 했다. <BR><BR>[대표적 인물] <BR>·임지(智) : 고려 말에 문하시중, 대제학을 지냈다. <BR>·임구(球) : 임지의 아들. 조선에서 호조참의를 지냈다. <BR>1,890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▣ 나주 임씨(羅州 林氏) <BR>나주 임씨의 시조는 고려 때의 대장군 임비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, <BR>그의 후손 임탁이 해남현무로 있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사직하고 회진으로 돌아가 세거하면서 <BR>본관을 회진으로 하였다.<BR>회진 임씨는 나주 임씨가 예전에 회진 임씨로 하였으나 지명이 나주로 바뀌어서 본관을 나주로 하였으<BR>므로 나주 임씨로 볼 수 있다. <BR><BR>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임비(林庇)이다. <BR>임비 이전의 상계는 유구하고 문적과 고증이 유실되어 계통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<BR>임비는 1281년(충렬왕 7년) 왕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공신 2등에 책록되고 대장군, <BR>충청도 도지휘사 판재사사에 이르렀다. <BR>임비의 9세손 임탁이 해남 현무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으로 돌아가 <BR>살면서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으나, 회진현이 나주에 속해짐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었다. <BR>그 발전과정을 상고하면 탁의 7세손 붕에서 기틀을 잡아 그 아들들이 현달하므로서 가계가 <BR>크게 부흥하였다.<BR><BR>[ 대표적 인물 ] <BR>·임서 : 인조 때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. <BR>·임담 : 임서의 아들. 인조 때 문과에 급제, 유탁(柳濯)의 모반사건을 처결하고 이조판서, <BR> 의금부판사를 지냈다. <BR>·임한호(漢浩) : 승지 임상원(象元)의 아들. 정조 때 문과에 급제, 이조판서, 판 의금부사 등을 거쳐 <BR> 순조 때 우의정을 역임했는데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벼슬할 수 있게 하였다. <BR>·임득명(得明) : 시, 서, 화의 삼절(三絶)로 불리었다. <BR>나주 262,862명, 회진 3,629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[항렬]<BR>24세 진(鎭)/ 25세 수(洙)/ 26세 상(相)/ 27세 병(炳)묵(默)/ 28세 규(圭)/ 29세 종(鍾)/ 30세 택(澤)/<BR>31세 채(采)/ 32세 섭(燮)/ 33세 재(在)/ 34세 현(鉉)/ 35세 해(海)/ 36세 동(東)/ 37세 환(煥) <BR><BR>▣ 평택 임씨(平澤 林氏) <BR>평택 임씨의 도시조 임팔급은 중국 당나라 문종때 우리나라에 온 한림학사로서 팽성(평택)용주방에 <BR>세거하여 본관을 평택으로 했다 나주, 회진 임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<BR>분관 되었으나 다 같은 동근이라 하여 현재 환적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.<BR><BR>평택임씨세보에 따르면 은나라 왕자 비간의 아들 견이 장림산에 은거하였기에 성을임이라 하였다. <BR>그 후손 팔급은 당나라 문종때 한림학사로 있었는데 간신들의 모함을 당해<BR>동료학사 7인과 함께 동래 하였다. <BR>신라에서 이부상서의 벼슬을 했는데 변방을 침범하는 오랑캐를 토벌하고 <BR>팽성(평택)의 용주방에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평택이라 하였다. <BR>그러나 그 후의 기록이 없어서 고려 말에 세자전객령을 지낸 <BR>임세춘(林世春)을 중시조(1세)로 하고 있다. <BR><BR>나주, 회진 임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임씨는 평택 임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. <BR>그러나 금세기에 모두가 팔급을 도시조로 하는 혈손이라는 신념으로 <BR>50여년 전에 갑자대동보를 편찬하였고 현재도 환적을 시도하고 있다. <BR><BR>[ 대표적 인물 ] <BR>·임정(整) : 임세춘의 증손. 태종 때 예조판서를 지내고 성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 었다. <BR>·임황(篁) : 임세춘의 10세손. 중추부영사를 지냈다. <BR>·임경업(林慶業) : 임황의 여덟 아들 중 넷째 아들.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, 병자 호란 때는 평안도병마<BR>절도사로 용맹을 떨쳤는데 김자점(金自點 )의 모함으로 피살되었다. <BR>·임언수(林彦修) : 고려 말 삼중대광을 지내고 충정공파의 파시조이다. <BR>·임성미(成味) : 임언수의 아들. 고려 우왕 때 왜구를 무찔러 삼사우사에 이르렀 다. <BR>·임견미(堅味) : 임언수의 아들. 홍건적의 난 때 1등공신이 되고, 제주 목호의 난 과 왜구를 쳐서 문하시<BR>중에 올랐으나 후에 전횡을 일삼다가 최영 이성계에게 살해되었다. <BR>·임제미(齊味) : 임언수의 아들. 판개성윤을 지냈다. <BR>194,550명이 있다.(1985년) <BR><BR>[항렬]<BR>24세 규(奎)/ 25세 종(鍾)수(銖)/ 26세 수(洙)옥(沃)/ 27세 동(東)근(根)/ 28세 용(容)환(煥)/ <BR>29세 주(周)기(起)/ 30세 은(銀)전(銓)/ 31세 태(泰)영(泳)/ 32세 상(相)후(朽)/ 33세 회(會)형(炯) <BR></FONT></P>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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